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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여해(安汝諧)
1657~1691 본관 죽산. 자 중화(仲和). 호 이병재(理病齋). 생원 국재(國宰)의 넷째 아들. 6세 때 어머니 상(喪)을 당하여 애도함이 남을 놀라게 하였고, 7세 때 아버지가 병환 중일 때 밤이 깊은 자시(子時)에 의원을 찾아가 약을 구해오는 등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송시열의 문하생으로 학문 또한 뛰어났다.
1682년 사마시의 진사과(進士果)에 합격하였으나 대과에는 나아가지 않고 향리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722년에 나산사(羅山祠. 나산면 나산리 동신 소재)를 창건하고 독향(獨享)하다가 1794년 문중의 결의에 의해 5세조 충달(忠達)을 주벽(主壁)으로 그와 여기, 치택(致宅)을 부벽으로 배향하였으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고 지금까지 복설을 못하고 있다. 아내는 제주양씨 우회(禹會)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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