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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진주. 선무원종 2등 공신에 책록되었다고 옛 함평현 읍지에 기록되어 있으나 자세한 행장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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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진주. 자 여서(汝瑞). 다경진(多慶鎭.현 무안군 운남면에 있던 수군진지) 수군 만호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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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진주. 자 형천(亨天). 기시조의 12세손. 흔수(欣壽)의 셋째 아들로 진사를 지냈다. 아내는 안동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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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진주. 자 봉서(鳳瑞). 목포 수군만호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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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1553. 본관 진주. 자 열(悅). 호구봉(九峰). 사평(司評) 벼슬에 있다가 연산조 때 영광군 불갑면에 유배되어 사망한 학손(鶴孫)의 일곱째 아들로 선공감역(繕工監役)을 지냈다. 유배된 아버지를 따라 당시 영광군이었던 구봉(九峰)에 이거 정착하였고 호를 구봉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봉이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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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장흥. 1759~? 자 원보(元甫). 호석촌(石村). 시조의 27세손. 언(愝)의 셋째아들. 효성이 지극하여 향리에서 칭송을 받았으며 1780년경 무안읍 약곡에서 엄다면 송로리로 이거 정착하여 장흥 고씨 함평군 입향조가 되었다. 아내는 이천서씨 종욱(宗旭)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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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1909 본관 담양. 자 원흥(元興). 호 화곡(華谷). 신광면 송사리 출신. 1876년에 흉년과 겹쳐 전염병이 극성이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전염병에 걸렸다. 어머니의 목숨이 경각에 이르렀을 때 병석에 있던 그가 기를 쓰고 일어나 손가락을 으깨어 주혈하여 어머니가 회생했다. 하늘이 효심에 감동하였던지 사경에 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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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 1880년경 나주에서 대동면 향교리로 이거하여 안동권씨 함평군 입향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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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속의 일곱째 아들. 숙종조 무과에 급제, 아내는 남평문씨 적순위 광필(匡弼)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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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9~1630 본관 광산. 자 달경(達卿). 시조의 25세손. 참봉 수해(遂海)의 아들로 진사과에 입격하였으며 주부(主簿)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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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광산. 시조의 20세손. 대사성 성옥(大司成成玉)의 둘째 아들. 태종조에 이조좌랑을 지냈고 1450년경 경남 창령에서 학교면 월산리로 이거 정착하여 광산김씨 함평 입향조가 되었다. 아내는 전 주최씨 승철(承哲)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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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선산. 호 노석(老石) 나산면 용두리 선박에서 출생. 김태원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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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상산. 호 이소재(履素齋). 영조 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을 지내며 각종 서적을 집대성하는데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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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자 현재(顯哉). 증 참의 사눌(思訥)의 아들. 원래 힘이 세었고 1618년(광해 10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1624년 안주(安州)의 도원수 장만(張晩) 막하에서 참적(斬賊)한 공이 많아 진무원 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고 1636년 일본사신으로 갔다가 1637년 2월 돌아와 병자호란 때 동래수사(東萊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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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광산. 몽성의 손자. 시조의 28세손. 163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부호군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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