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조선시대 태종 9년
1409년 1월 18일(음력) 함풍현과 모평현 두 현을 합병 함풍현에서 “함”자 모평현에서 “평”자를 따 함평현(咸平縣)이라 했고, 고종 32년(1895년) 5월 26일(양력) 함평군으로 개칭했음.
1409년 1월 18일(음력) 함풍현과 모평현 두 현을 합병 함풍현에서 “함”자 모평현에서 “평”자를 따 함평현(咸平縣)이라 했고, 고종 32년(1895년) 5월 26일(양력) 함평군으로 개칭했음.
1963년 1월 1일
함평면이 함평읍으로 승격됐고 현재 함평군은 1읍(함평) 8면(손불, 신광, 학교, 엄다, 대동, 나산, 해보,월야)으로 돼 있다.
구석기시대부터
함평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청동기시대
기원전 2~3세기 경에 청동기를 제작할 수 있는 부유한 집단이 살았다.
원삼국시대
마한에 속했으며 마한 54개 소국 중 1~2개 소국이 함평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백제시대
대략 동성왕 20년(498년) 이 후에 백제 지배권으로 들어 간 것으로 보이며 굴내현과 다지현을 두었다. 백제 패망 후 당(唐)이 7주 설치(663년~671년) 시 굴내현을 군라현(軍那縣), 다지현을 다지현(多支縣)으로 했다.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년(757년)에 굴내현을 함풍현(咸豐縣), 다지현을 다기현(多岐縣)으로 고치고 물아혜군(勿阿兮郡)의 속현으로 했다.
후백제시대
진성왕 6년(892년) 견훤의 기병에 의해 후백제 세력권으로 들어갔다.
고려시대
936년 후백제가 망하고 태봉국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태조 23년(940년) 다기현을 모평현(牟平縣)으로 바꾸었다. 현종 9년(1018년) 함평, 모평 두 현을 영광군(靈光郡) 영현으로 했다. 명종 2년(1172년) 함풍현과 모평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공양왕 3년(1391년) 영풍향과 다경부곡(多慶部曲. 현 무안군 현경면), 해제근농방어사를 함풍의 감무가 겸임했다.
태조 23년(940년) 다기현을 모평현(牟平縣)으로 바꾸었다. 현종 9년(1018년) 함평, 모평 두 현을 영광군(靈光郡) 영현으로 했다. 명종 2년(1172년) 함풍현과 모평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공양왕 3년(1391년) 영풍향과 다경부곡(多慶部曲. 현 무안군 현경면), 해제근농방어사를 함풍의 감무가 겸임했다.
조선시대
태조 1년(1392년) 해제현(海際縣)과 임치현(臨淄縣)을 함풍현에 병합. 태종 9년(1409년) 1월 18일(음력) 함풍현과 모평현 두 현을 합병 함풍현에서 “함”자 모평현에서 “평”자를 따 함평현(咸平縣)이라 함. 태종 13년(1413년) 함평현에 최초의 중앙관원인 현감(縣監. 종 6품)을 둠. 고종 32년(1895년) 5월 26일(양력) 함평군으로 개칭하고 광주관찰부에 속했으며 9월 5일 면(面), 결(結), 호수의 다소에 따라 5개 등급 군중 2등군이 됐다.
대한제국시대
고종황제 광무 10년(1906년) 9월 24일 나주부 관할이던 대화면, 장본면, 여황면, 적양면, 오산면을 편입하고 해제면과 다경면을 무안군에 이속.
일제시대
1914년 3월 1일부터 실시한 군 관할구역 조정에 따라 장본, 적양, 여황면을 본양면으로 통합해 나주군에, 오산면은 광주군, 대화면은 장성군에 이속했다. 목포부의 엄다산면, 신로면을 엄다면으로 통합하고 금동, 진례, 좌촌 면을 학교면으로 통합해 함평군에 편입했다.
대한민국 시대
1963년 1월 1일 함평면이 함평읍으로 승격, 현재 1읍 8면으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