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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몽성(金夢成)
1562~1598 본관 선산. 자 천보(天輔). 호송포(松圃). 시조의 23세손. 군기시 주부덕수(德秀)의 둘째 아들.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여 주부, 정읍현감을 역임하였고 임진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군진에 들어가 전좌(前佐)로 거제싸움에서 적 수십급을 베고 또 원균(元均)을 구하는 등 전과를 올리자 충무공이 그를 항시 내막(內幕)에 두었다. 1593년 왕이 환도하고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하여 옥중에 갇히는 몸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이순신이 삼도통제사로 부임하여 벽파진(碧波津)에 유진하고 있을 때 주위의 장정을 거느리고 합류한 후 다음날 고금도(古今島)에서 군량을 확보하였으며 1598년 10월 21일에는 양강(楊江)에 있는 육지의적을 격멸하고 22일에는 고도(姑島)의 적선을 격파하였으며 25일에는 첨산(尖山.소대산)의 적을 쳐 대승하였다. 11월 노량 해전에서 충무공과 함께 적선을 격파하다가 탄환에 맞아 전사하니 동생 몽득(夢得)이 초혼하여 나산면 용두리 선박 마을 앞 선산에장례하였다. 1604년 선무원종 2등 공신에올랐고 1730년 선호사에 배향되었으며 1816년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아내는 광산이씨 참봉 공한(公漢)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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