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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몽복(金夢福)
1553~1598 본관 선산. 자 천신(天伸). 호 죽포(竹圃). 시조의23세손. 군기시 주부 덕수(德秀)의 맏아들. 나이 20에 이미 병서에 달통하였고 1584년(선조 17) 무과에 급제하여 한성 참군을 거쳐 병조참의에 승진되었으며 1591년 고향에 내려와 있던 중 이듬해 임진왜란이 나자 나주성 수성장으로 양곡을 운반하고 병력을 조련하는데 힘을 다하였으며 토적(土賊)이 일어나자 이를 쳐 평정하였고 정유재란에 이순신이 남쪽 바다에서 고군분투할 때 동생 몽성(夢成)이 참의(參議)로 벽파진(碧波津)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에 이순신 군진을 돕기 위해 의병 수 백명을 모아 출진하였는데 부대에 이르기 전에 왜선 100여척을 만나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군사는 거의 물에빠지고 그도 적의 칼에 이빨과 입술이 일그러지는 등 크게 상처를 입자 적을 호되게 꾸짖고 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바람에 의해 해안으로 표류되어 명나라 장수 진린의 구원을 받아 살아나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소대산(小大山)에 이르렸는데 이 때는 이미 충무공 이순신과 그의 동생 몽성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뒤였다. 그는 앙천 통곡하고 적진에 뛰어들어 독전하다가 이날 순국하였으며 초혼하여 나산면 월현에 장례를 치뤘다. 선무원종공신록에 책록되고 1730년 선호사(船湖祠. 나산면 용두리 소재)에 배향 되었으며 1816년 병조판서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