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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국빈(徐國賓)
1632~1692 본관 이천 자 흥경(興慶). 호 난파(蘭坡). 중조 인(鱗)의 12세손. 영조(榮祖)의 셋째 이들. 미수 허 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678년에 진사과에 입격하였으며 동년 겨울에 선조조의 대학자 곤재 정개청(困齋 鄭介淸)의 서원에 사액(賜額)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12월 5일에 재가를 얻고 1679. 4.3에 자산서원(紫山書院)이란 사액이 내리고 치제(致祭)하게 되었다. 1681년에 성균관 전적(典籍)을 역임하였으며 아내는 파평 윤개업(尹繼業)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