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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리 방대형 고분
주소 | 전남 함평군 대동면 금산리 산 8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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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명칭 | 금산리방대형고분 | ||
지정번호 | 전남기념물 제151호 | 지정일 | 1994년 1월 31일 |
분류 | 고분 | 수량/면적 | 장변 약 50m, 단변 약 40m, 높이 약 10m |
시대 | 삼국시대 |
전라남도 함평군 대동면 금산리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
1994년 1월 3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됐다. 이 고분은 함평군 함평읍, 대동면, 신광면이 교차하는 해발 40m 가량의 낮은 구릉에 위치하는데 주민들은 이를 노적봉이라고 부른다.
분구 일부가 훼손돼 있지만 전체적으로 방대형(方臺形)을 이루며 평면이 사각형으로 각 모서리가 동서남북을 가리킨다.
동쪽에는 조그마한 딸린 무덤[陪塚] 1기가 있다. 규모는 장변 약 50m, 단변 약 40m, 높이 10m 정도이다.
분구 정상부에는 길이 1.8m, 높이 0.6m 정도 크기의 판석(板石)이 노출돼 있어서 돌방[石室]의 벽석(壁石)으로 추정되지만, 이 판석은 분구 한쪽에 치우쳐 있고 전체 분구에 비해 그 규모가 작기 때문에 다른 돌방이나 옹관(甕棺)이 공존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분구 곳곳에는 할석(割石)이 노출돼 있어서 분구를 덮은 이음돌[葺石]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이 고분 이외에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에 있는 성수동 고분이 이음돌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금산리 방대형고분은 전라남도 지방의 고분 가운데 규모면에서 최대급에 속하는 거대한 고분이며, 이음돌무덤[葺石墓]으로는 남한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분이다. 함평군에는 기원전 2세기의 나산면 초포리(草浦里) 유적을 비롯해 서기 3세기에 해당하는 월야면 예덕리(禮德里) 고분군 등 중요한 유적이 많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금산리 방대형고분을 비롯한 삼국시대의 고분도 많이 분포해 있다.
따라서 삼국이 성립하기 전부터 적지 않은 세력이 함평 일대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지만 삼국시대의 것으로 독무덤[甕棺墓], 돌방무덤[石室墳], 장고분(長鼓墳) 등 다양한 고분들이 혼재하고 있어 당시 사정이 매우 복잡하였음을 암시해준다.
1994년 1월 3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됐다. 이 고분은 함평군 함평읍, 대동면, 신광면이 교차하는 해발 40m 가량의 낮은 구릉에 위치하는데 주민들은 이를 노적봉이라고 부른다.
분구 일부가 훼손돼 있지만 전체적으로 방대형(方臺形)을 이루며 평면이 사각형으로 각 모서리가 동서남북을 가리킨다.
동쪽에는 조그마한 딸린 무덤[陪塚] 1기가 있다. 규모는 장변 약 50m, 단변 약 40m, 높이 10m 정도이다.
분구 정상부에는 길이 1.8m, 높이 0.6m 정도 크기의 판석(板石)이 노출돼 있어서 돌방[石室]의 벽석(壁石)으로 추정되지만, 이 판석은 분구 한쪽에 치우쳐 있고 전체 분구에 비해 그 규모가 작기 때문에 다른 돌방이나 옹관(甕棺)이 공존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분구 곳곳에는 할석(割石)이 노출돼 있어서 분구를 덮은 이음돌[葺石]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이 고분 이외에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에 있는 성수동 고분이 이음돌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금산리 방대형고분은 전라남도 지방의 고분 가운데 규모면에서 최대급에 속하는 거대한 고분이며, 이음돌무덤[葺石墓]으로는 남한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분이다. 함평군에는 기원전 2세기의 나산면 초포리(草浦里) 유적을 비롯해 서기 3세기에 해당하는 월야면 예덕리(禮德里) 고분군 등 중요한 유적이 많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금산리 방대형고분을 비롯한 삼국시대의 고분도 많이 분포해 있다.
따라서 삼국이 성립하기 전부터 적지 않은 세력이 함평 일대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지만 삼국시대의 것으로 독무덤[甕棺墓], 돌방무덤[石室墳], 장고분(長鼓墳) 등 다양한 고분들이 혼재하고 있어 당시 사정이 매우 복잡하였음을 암시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