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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학영(牟鶴泳)
1529~1605 본관 함평. 처음 이름 환형(還亨). 자 내서(來棲). 지효재(至孝齋). 시조의 47세손. 선무랑 태산(泰山)의 아들. 1550년 문과에 급제하여 헌릉 참봉을 지냈으며 1600년 아버지가 91세로 병환 중일 때 똥 맛을 보아가며 치료하였고 손가락을 째고, 허벅지의 살을 베어 약으로 드리는 등 극진히 간호를 하였고 상을 당하여 70세의 나이에 3년간 시묘를 살았다. 시묘살이를 할 때 주위의 온갖 새들이 날아와 조의를 하였고 양 쪽에서 호랑이가호위를 하였다고 족보에 기술하고 있다. 아내는 현감 평산 신수(申銖)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