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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9~1682 본관 함평. 자 성첨(聖添). 호 구오재(九五濟). 시조의 20세손. 문과급제 수남(秀南)의 맏아들. 1678년 기노사(耆老社)에 들어가고 동지중추부사(同之中樞府事)직에 제수되었다. 아내는 제주 양유택(陽有澤)의 딸, 인동 장춘조(張春祚)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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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 1837 본관 함평. 자 덕오(德五). 호 춘사(春史). 시조의 25세손. 장령 달겸(達兼)의 아들로 1814년 성균관 생원시에 장원 합격하였다. 아내는 함평 이진형(李鎭衡)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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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1~1627 본관 함평. 자 응운(應雲). 호 화암(華菴). 시조의 18세손. 윤명(胤命)의 맏아들로 1556년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 용양위 부호군, 두모포 만호(豆毛浦萬戶)를 지냈다. 아내는 금성나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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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1478 본관 함평. 자 중옥(仲玉). 호 월탄(月灘). 시조의 11세손. 지간원 순(恂)의 아들 1412년 문과에 급제하여 좌찬성(左贊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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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2∼1544 본관 함평. 자 파일(華一). 호 죽계(竹溪). 시조의 15세손. 방익(方益)의 아들 151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냈다. 아내는 부사 파평 윤화로(尹華老)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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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1760 본관 함평. 자 의집(義集). 시조의 23세손. 무과 급제 태성(泰成)의 둘째 아들. 1729년 통덕랑에 올랐다. 아내는 인동 장계한(長啓漢)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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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8~1747 본관 함평. 자 원서(元瑞). 호 석옹(石翁). 시조의 22세손. 부호군 유하(有夏)의 둘째 아들. 1705년 문과에 급제하여 부장(部將), 내첨시(內瞻侍) 주부, 언양현감, 진해현감, 김해진관절제도위, 원주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아내는 찰방 연안 차재문(車載文)의 딸, 진사 이천 서영현(徐永鉉)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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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1~1598 본관 함평. 자 국포(國圃). 호 덕암(德巖). 시조의 18세손. 문과 급제 학영(鶴永)의 아들로 충성심이 남달리 강하였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주위에 의분과 적개심을 불러 일으킨 후 “모두들 나라를 구하라러 가자.”고 호소 의병을 모집하고 집안의 노복들을 모두 참여시켜 전투부대를 편성 한 후 “소의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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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함평. 자 천로(天露). 시조 경(慶)의 손자. 광정(光炡)의 아들. 1182년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전서(典書), 삼중대광 보국광록대부 문하시중(三重大匡輔國光祿大夫門下侍中)을 역임했다. 아내는 평강채씨 인지(仁智)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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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1587 본관 함평. 자 부인(夫仁). 호 운곡(雲谷). 시조의 16세손. 난(蘭)의 맏아들로 1541년 진사과에 입격하였다. 아내는 청주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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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함평. 자 도유(道儒). 시조 경(慶)의 5세손, 원기(元機)의 아들. 1241년(고려고종 28)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서, 시중을 지냈다. 아내는 함양박씨 상의원 직장(尙衣院直長) 원규(元揆)의 딸이며 묘소는 함평읍 수호리 수산 중록(水山 中麓)에 있고 합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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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1600 본관 함평. 처음 이름 경성(敬性). 자 신겸(信兼). 호 지곡(智谷). 시조의 16세손. 한성판윤 인(藺)의 맏아들.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선무랑을 지냈다. 아내는 첨정 연일 정필(鄭泌)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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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6~1702 본관 함평. 자 태향(台鄕). 호 송은(松隱). 시조의 22세손. 부호군 유년(有年)의 맏아들로 1695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에 올랐다. 아내는 광산김씨 기려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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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9~1605 본관 함평. 처음 이름 환형(還亨). 자 내서(來棲). 지효재(至孝齋). 시조의 47세손. 선무랑 태산(泰山)의 아들. 1550년 문과에 급제하여 헌릉 참봉을 지냈으며 1600년 아버지가 91세로 병환 중일 때 똥 맛을 보아가며 치료하였고 손가락을 째고, 허벅지의 살을 베어 약으로 드리는 등 극진히 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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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1848 본관 함평. 자 성옥(成玉). 호 야암(野菴) 시조의 25세손. 주진(周鎭)의 넷째 아들로 문행과 효성이 뛰어났고 문집이 간행되어 세상에 전한다. 아내는 상산 김후(金后)의 딸, 그리고 광산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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