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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순(牟 恂)
1373~1459 본관 함평. 자 순지(恂之). 호 절강(截江). 시조의 10세손. 첨정 세택(世澤)의 맏아들로 모평현 모양리(牟陽里.현 해보면 상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396년 생원, 진사과에 입격하였고 1417년(태종17) 문과에 급제하였다. 문하주서(門下注書), 교감(校勘)을 거쳐 1427. 2. 29(세종 9) 거창현감에 제수되고, 1435. 2. 1 좌헌납(左獻), 1439. 12. 18 사헌부 장령에 제수되고, 사인(舍人), 군기감정(軍器監正)을 역임하고 1443.7. 7 대마도 체찰부사(對馬島 體察副使), 1444. 1. 12 사헌부 집의(執의), 동년 2월7일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 전제소 별감(田制所 別監), 회양부사(淮陽府使)를 지냈고, 1446. 2 판사재감사(守判司宰監事)에 제수되는 등 내외직을 두루 거쳤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자료 발췌〉
단종 폐위에 불복하고 귀향하여 임천산 아래 모양에서 은거하며 눈물지었으며 사육신이 화를 입은 후 체포되었다가 풀려나 경남 진주로 이거 타계하였다. 그는 충성심 뿐 아니라 효성도 지극하여 하루는 아버지의 약을 구하러 가는데 큰비가 와서 냇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니 돌연히 비가 멎어 건널 수가 있었고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상여를 모시고 가는데 또 비가와서 강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자 하늘을 우러러 외치니 비가 멋고 강물이 줄었다. 이리하여 그를 절강(截江)이라 불렀고 그의 호가 되었다. 이러한 말을 전해들은 세조가, “절강이라는 한 이름이 해동을 밝히고 종산(종산. 순이 살던 곳의 지명)의 한 머리칼이 수양산과 함께 푸르리라 <截江一名明於海東 鍾山一髮 首陽同靑>” 는 시를 지어 보냈다. 1531년(중종 26)에 정려의 은전이 내리고 덕천사(德川祠. 신광면 삼덕리 덕천 소재)에서 배향한다. 아내 지평 남양 이희(李僖)의 딸은 묘가 해보면 월양산에 있고, 대제학진양 정존(鄭存)의 딸은 진주 상사면 괘종산(掛鍾山) 갑좌 남편묘와 합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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