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노 허(魯 栩)
1545~1581 본관 함평. 자 극화(克和). 시조의 15세손. 희찬(熙纘)의 셋째 아들. 그는 갓난아기 때 어머니를 여의고 자랐는데 서모(庶母)를 섬기기를 친어머니 같이 하였으며 눈보라가 치는 추운 날에도 방죽 얼음을 두들겨 깨고 잉어를 잡아 어버이를 봉양하였고 아버지가 중병에 들어 사경을 헤맬 때 혈지(血指)로써 회생케하여 40년을 더 사시게 하였다. 또 춘궁기를 맞아 끓일 양식이 없어 갓 나온 보리 모개를 만지며 울었는데 어인 일인지 일찍 여물이 들어 위급을 면한 일이 있다. 부모님께 드릴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불귀의 객이 되었으며 이 소식이 나라에 전해져 1636년 정려를 세우라는 은전이 내렸고,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함평읍 진양리 대진(大津. 하느리)마을 앞에 효자각이 있다.
함평읍 진양리 대진(大津. 하느리)마을 앞에 효자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