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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철수(魯哲秀)
1531~1609 본관 함평. 자 군준(君濬). 호 지은(芝隱). 시조의 16세손. 겸(謙)의 아들로 효성이 출천(出天)하였다. 67세 때인 1597년 정유재란 8월 4일에 아버지가 91세로 별세하자 시묘살이를 하는데 왜적이 쳐들어왔다. 이 때에 큰 새가 수없이 날아와 여막을 에워싸며 날아 화를 면했으며 여묘를 마치기까지 3년간 새의 보호가 계속되었다. 이 까닭에 사람들이 “노지은치(魯芝隱峙)”라 불렀으니 지금의 “노치(魯峙)”다.
1607년 어사 한준겸(韓浚謙)이 장계하여 특별히 순릉참봉에 제수하였으나 불취하였고 수직(壽職)으로 첨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아내는 광산김씨 나수(羅受)의 딸, 그리고 김해김씨인데 김해김씨는 정유재란때 어린이 두 명과 함께 대천(大川)으로 피하였다. 때에 남편이 여막에서 왜적에게 살해되었다는 잘못 전해진 소식을 듣고 혼자서 살아서 무엇하느냐며 물속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이 사실이 함평지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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