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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성(魯有聖)
1621~1698 본관 함평. 처음 이름 인성(仁聖). 자 희길(希吉). 호 서은(西隱). 시조의 18세손. 정랑 덕원(德元)의 셋째아들, 형 사성, 유성과 함께 병자호란 때 창의하여 전주에 이르렀을 때 강화가 성립되어 귀향하였고 1654년(효종 5)에 북벌을 고대하는 상소와 함께 군량으로 100석을 나라에 바치니 효종이 기뻐하며 중림찰방(重林察訪)을 제수하였다. 대동면 향교리 고시에서 무안군 해제면으로 이거하여 정착했다. 아내는 함평이씨 홍상(弘祥)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