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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훈(魯榮勳)
1807~1858 본관 함평. 호 석천(石泉). 시조의 24세손. 효채의 셋째 아들. 한 때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에 응시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수신제가하여 사람된 본분을 다할 것을 결심했다. 두형들과 협심하여 부모를 섬기고 논밭을 일구며 여가에 학문을 닦았다. 성인이 되어 가정 형편상 앞마을 장동(壯洞)으로 분가했는데 사친(思親)의 정에 색다른 음식을 보면 본가로 가져와 부모께 드렸고 아침 저녁 문안을 거르지 않았다. 그래서 두 마을사이에 있는 산에 새길이 생겼다. 40세 되던 해 어머니가 별세하자 외로운 아버지를 위로하고 즐겁게 해드렸는데 집으로 모시면 형들이 모셔가고 모셔갈 때마다 3형제가 몸소 가마를 매었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사후 나라에서 효행과 학문을 가상히 여겨 동몽교관을 내리고 효자각을 세우라 하명하였다.
유고 “석천집(石泉集)”이 있으며 1890년 학교면 복천리 장동 마을 앞에 효자각을 세웠다. 아내는 평택임(林)씨 우배(宇培)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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