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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렬(魯榮烈)
1832~1876 본관 함평. 처음 이름 봉렬(奉烈). 자 태서(泰瑞). 시조의 24세손. 이해(以楷)의 아들로 함평노씨 보첩에, “아버지의 병환에 엄동설한임에도 설단(設壇)을 하고 하늘에 완쾌되기를 빌었는데 두 마리의 노루가 나와 목놓아 울자 어름을 깨고 두 마리의 잉어가 솟아올랐다. 이 잉어를 고아드려 여러 달 연명하였으며 돌아가시자 3년간 시 묘를 살았다. 그가 타계하자 3년간 묘동(墓洞)에 하얀꽃이 피었으며 이에 마을 사람들이 ‘노효동(魯孝洞)’이라 불렀고 누차 효천되어 1892년 정려가 내렸다” 라고 기술되어있다. 아내는 언양김씨 수해(壽海)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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