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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련(金爀鍊)
1746~1802 본관 선산. 처음 이름 용려(用礪). 자 공호(公浩). 호 영모재(永慕齋). 시조의 30세손. 치달(致達)의 둘째 아들. 성재 허전(性齋許傳)의 문하생으로 1781년에 대흉년을 만나 기아 상태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조정에 알려 특히 백미 3천석을 내리게 하여 빈민을 구제하였다.
이 공으로 도정(都正)을 제수 받았다. 아내는 파주염씨(波州廉氏) 낙기(洛基)의 딸이다.
이 공으로 도정(都正)을 제수 받았다. 아내는 파주염씨(波州廉氏) 낙기(洛基)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