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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용(金燦容)
1847~1893 본관 선산. 처음 이름 두용(斗容). 자 성진(聖珍). 호 적계(翟溪). 시조의 31세손. 백련(百鍊)의 아들. 효우돈목하고 성리학에 밝았으며 향리에 덕을 베풀어 마을 사람들이 이를 기리기 위해 비를 세웠으며 1876년 효로 등천되어 감찰을 제수 받았다. 아내는 경주이씨 규한(圭翰)의 딸로 남편 보다 ’더 효심이 강하여 천장을 받았으며 이 사실이 나주읍지와 도지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