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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金 遂)
1673~1646 본관 김해. 자 성재(成哉). 호 화죽당(花竹堂). 시조의 63세손. 팽우(彭祐)의 넷째 아들로 대동면 덕산리에 출생하였고, 1606년에 사마시에 입격하였으며, 1613년(광해 5)에 문과 급제하였으나 당시 조정이 혼란하여 귀향하였다. 인조 반정후인 1624년 사헌부 감찰에 제수되고, 정묘호란 때 김류와 더불어 왕을 호종 하였으며 정란(靖亂) 후 무장(茂長), 보령현감, 고성현령을 거쳐 사헌부지평, 장령, 사간원 정언(正言), 경상도사, 1638년에 홍문관 교리 겸 경연춘추관사(經筵春秋館事)를 지냈다. 아내는 도사(都事) 함평 노희(魯禧)의 딸, 장사랑 파평 윤잉(尹仍)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