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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3~1848 본관 광산. 자 군원(君源). 호 지족당(知足堂). 시조의 31세손. 세옥(世沃)의 둘째 아들. 효우가 순독(純篤)하고 학행이 뛰어났으며 1893년에 효로 정려가 내리고 사헌부 감찰을 증직 받았다. 아내는 함평이씨 종채(宗彩)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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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속의 둘째 아들. 숙종조 무과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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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선산. 시조의 18세손. 자 경립(敬立). 호 용암(龍岩). 장사랑 자렴(自廉)의 아들, 점필재 김종직( 畢齋金宗直)의 문하생이며 한훤당(寒暄堂), 일두와 교의를 맺었고 사헌부 집의(執義)를 지냈다. 1498년 무오사화(연산군 4)때 화를 피하여 함평군 나산면 용암(현 용두리 선박)으로 이거 정착하여 호를 용암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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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자 장숙(章淑). 호 지송(遲松). 문민공 일손의 후예. 최면암 문인. 유고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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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철종조에 재령군수를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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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선산. 자는 복화(復和). 호는 성헌(省軒). 간의 우유(右鏐)의 후손이요 미수 허목의 문인. 경사의 이치에 밝았고, 문집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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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0~1701 본관 선산. 자 경보(慶甫). 호 모석재(慕惜齋). 시조의 26세손. 여정(汝淨)의 아들. 허목의 문하생으로 학행과 효행이 뛰어났으며 후진양성에 온 힘을 썼다. 문생록과 문집이 전하며 1730년 선호사(船湖祠. 나산면 용두리 소재)에 배향되고 1816년 효행으로 동몽교관에 증직되었다. 아내는 나주정씨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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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선조조(宣祖朝). 자 안여(安汝). 호 남은(南隱). 문민공 일손의 후예. 일찌기 문행(文行)으로 드러나 경사(經史)를 널리 섭렵하고, 숲 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많은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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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0~? 본관 선산. 자 내삼(乃三). 시조의 28세손. 태경(泰卿)의 아들. 효로 천거되어 동몽교관을 지냈다. 아내는 전주리씨 득수(得秀)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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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3~? 본관 상산. 자 은경(殷卿). 호 모당(慕堂). 시조의 15세손. 군수 오정(五鼎)의 아들로 중종 때 절충장군 용양위 대호군(折衝將軍 龍 衛 大護軍), 통정대부 장예원 판결사(掌隸院 判決事)를 지냈다. 아내는 창녕조씨(曺氏) 진사 영평(永平)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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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광립(光立)의 아들. 부산진 수군절제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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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녕. 임진란때 수도 서울을 방비하다가 밤에 기습한 왜병과 싸워 여러 명을 죽이고 그도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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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1646 본관 김해. 자 성재(成哉). 호 화죽당(花竹堂). 시조의 63세손. 팽우(彭祐)의 넷째 아들로 대동면 덕산리에 출생하였고, 1606년에 사마시에 입격하였으며, 1613년(광해 5)에 문과 급제하였으나 당시 조정이 혼란하여 귀향하였다. 인조 반정후인 1624년 사헌부 감찰에 제수되고, 정묘호란 때 김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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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상산. 정조 때 무과에 급제하여 황해도 수군 우후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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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3~1597 본관 광산. 호 금은(錦隱). 시조의 24세손. 대사성 성옥(成玉)의 6세손. 현감 혼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침착하고 담력이 뛰어났으며 1559년(명종 14)무과에 급제하여 1560년 사헌부 집의(執義)에 특진되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비분을 이기지 못해 60세가 넘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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