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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몽득(金夢得)
1564~1654 본관 선산. 자 천빈(天賓). 호남은(南隱). 시조의 23세손. 주부 덕수(德秀)의 셋째아들. 효우로 당세에 이름이 높았고 음사로 통정에 올랐으며 정유재란에 몽복, 몽성, 두 형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하니 초혼하여 장례를 치루었고 부모와 친척을 배로 피신시켜 무사하게 하였으며 91세에 타계하였다. 1730년 선호사에 배향되고 1816년에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아내는 함평이씨 직장 세현(直長世賢)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