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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0~1592 본관 김해. 자 성문(成文). 호 약재(藥齋) 또는 모재(慕齋). 장성 남문창의(南門倡義)를 주도한 익웅(翼熊)의 아들로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으며 아버지를 따라 장성 남문창의에 참여하였고 아버지가 왜적에게 화를 당하자 원수를 갚기위해 출전하여 평양에서 적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장성 오산사(鰲山祠)에…
본관 선산. 자 탁윤(卓允). 호 영암(穎庵). 시조의 22세손. 정국(定國)의 셋째 아들. 군기사 주부(軍器寺主簿) 겸 부호군(副護軍)을 지냈으며 임진란을 당하여 팔도가 적에게 유린되자 의분을 참지 못하고 의병을 모아 여러 전투에서 용전을 하였고 끝내 강릉 전투에서 순국하니 초혼하여 선영의 묘소에 장례하였다. 아내는 남…
본관 김해. 명종조에 순천부사를 지냄
1805~1849 본관 선산. 자 양여(良汝). 호 성재(省齋). 시조의 30세손. 치방(致邦)의 맏아들. 부모를 섬기되 뜻으로 섬겼으며 어버이 상에 6년 동안 죽을 먹으며 예를 다하였고 행의로 천거되어 경릉(敬陵)참봉이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사실이 읍지와 도지에 실려 있다. 아내는 남평문씨 재도(在道)의 딸이…
1827~1891 본관 광산. 호 화암(華庵). 문숙공 19세손. 시조의 32세손. 익수의 양아들. 생부 진수. 신병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여러 달 100리 밖에서 약수를 길러다 복용케 하여 병을 낫게 하였고 그샘을 “효천(孝泉)”이라 불렀다. 신병이 재발하자 10개월동안 약탕을 끊이지 않았으며 상을 당하자 3년간 …
김태원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1598 본관 김해. 자 언백(彦伯). 참봉 경유(景維)의 아들. 천성이 강개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임진란때 백의로 이순신(李舜臣)을 도와 예교(曳橋) 전투. 돌산(突山) 전투에서 수많은 적을 참살하였다. 1598년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였으며 아들 팔옥(八鈺)은 병자호란 때 백의로 의병을 이르켰다.
본관 광산. 호 매죽헌(梅竹軒). 인조조인 1621년 무과에 급제하여 1623년에 선전에제수되었으며 인조반정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에 책록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왕이 공주에 파천을 할 때 호종하였고 병자호란 때는 동궁과 함께 전주로 내려와 있다가 타계하였다. 1828년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1530~? 본관 도강. 자 환겸(環兼). 파조 일(鎰)의 9세손. 성균관진사 원형(元亨)의 아들. 1549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절제사를 지냈다. 아내는 경주정씨(慶州鄭氏) 방준(邦俊)의 딸이다.
본관 김해. 1450년경 나산면 구산리에 이거 정착
1478~? 본관 고성. 처음 이름 질통(質通). 시조의 37세손. 생원 자경(自卿)의 양아들. 생부 익경(益卿), 학행이 사림의 사표가 되었으며 1523(중종 18)년에 문천훈도(文川訓導)로 제수되어 4년간 진력을 다했으며 1527년 임실(任實)현감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향리에서 유유자적하였다. 1552년에 이조…
1564~1654 본관 선산. 자 천빈(天賓). 호남은(南隱). 시조의 23세손. 주부 덕수(德秀)의 셋째아들. 효우로 당세에 이름이 높았고 음사로 통정에 올랐으며 정유재란에 몽복, 몽성, 두 형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하니 초혼하여 장례를 치루었고 부모와 친척을 배로 피신시켜 무사하게 하였으며 91세에 타계하였다. 1730년…
1563~1597 광산. 대사성 성옥(成玉)의 7세손. 집의 수연(壽淵)의 넷째 아들. 정유재란 때 남원성 싸움에서 아버지를 따라 형 몽룡, 몽필, 아우 몽업과 함께 전라병사 이복남(李福男)의 막하에서 성을 지키다 모두 전사하였다.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고 1693년 금우사(錦宇祠. 학교면 금송리 금산소재)를 창건하여 배…
1558~1597 본관 광산. 자 용화(龍和). 시조의 25세손. 대사성 성옥(成玉)의 7세손. 집의 수연(壽淵)의 맏아들로 1583년(선조16)에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도 지휘사(指揮使)를 지냈다. 정유재란 때 아버지와 함께 5형제가 의병을 일으켜 남원성을 사수한 전라 병사 이복남(李福男)의 막하로 들어가 형제가 용감히 …
1563~1651 본관 선산. 자 인숙(仁淑). 호춘담(春潭). 시조의 23세손. 현릉참봉 형길(亨吉)의 아들. 1591년(선조 24) 무과에 급제 하여 전주판관(全州判官)을 지냈으며 임진왜란을 당하자 가족을 나산면 원선리 논골(沓洞)로 피난 시키고 삼종형 몽성(夢成)과 함께 창의하여 군무(軍務)를 도왔다. 노량해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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