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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찬(徐希贊)
1239~? 본관 이천. 자 희언(希彦). 호 기은(箕隱). 시조의 11세손. 중정대부 선(瑄)의 아들. 학문을 좋아하였고 20세에 등과하여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냈으며 홍문계(洪文繼), 송송례(宋松禮)와 함께 난을 토평한 공으로 기성군(箕城君)에 봉작되었다. 충렬왕 때 국정이 문란함을 보고 환멸을 느껴 벼슬을 버리고 갈동면(현 월야면 용월, 양정리 일대)으로 내려와 정착하였다. 아내는 여양진씨 감정 석룡(監正錫龍)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