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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빈(朴碩彬)
1702~? 본관 밀양. 자 관일(貫一). 호 용재(勇齋). 시조의 27세손. 민호(敏昊)의 셋째 아들로 함평에서 전북 운봉으로 이거 정착하였다. 1730년(영조 6)에 병절교위 용양위 부사과, 여절교위 훈련원판관, 부사직(副司直)에 올랐다. 이인좌와 정희량(鄭希亮)이 반역하여 함양의 팔양치(八良峙)에 이르렀을 때 그가 본진영장 손명대(孫命大)와 같이 21명의 정예를 통솔하고 나아가 수천의 반역도를 포획하고 함양을 토평한 후 관군을 인솔하여 영남에서 개선하였다, 이 사실이 국사와 운성지(雲城誌)에 실려 있다. 아내는 청도김씨 사과 필중(必仲)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