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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도(金宗道)
본관 광산. 1571~? 자 중백(重伯). 호 죽촌(竹村). 시조의 26세손. 군수 경성(慶成)의 아들.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의 문하생이며, 장사랑(將仕郞)으로 병자호란 때 아우 종지(宗智)와 함께 창의하여 청주(淸州)에 이르렀으나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 귀향하였다. 아내는 금성나씨 수사 체암 대용(羅大用)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