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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7~1761 본관 죽산. 자 명숙(明叔). 향양헌(向陽軒). 만옥의 둘째 아들. 1713년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아내는 남양홍씨 생원 누의 딸이다.
1702~1777 본관 죽산. 자 거광(居廣). 호 무은재(無隱齋). 만우(晩遇)의둘째 아들. 1729년 사마시의 생원과에 합격하였으며, 1739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 정언, 지평, 사간(司諫) 등을 역임하는 등 벼슬이 가선대부에 이르렀다. 영조대왕이 “나라를 걱정하는 성의가 강호에 중엄(仲淹)한 자로 5O여년간 …
1587~1626 본관 죽산. 자 무중(懋仲). 호 권유자(倦遊子). 충달의 증손. 강항(姜沆)의 문하생으로 진사과에 입격 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오로지 학문을 닦는데 힘을 써 사림의 표상이 되었다. 아내는 광주(廣州)이씨 정(挺)의 딸, 함양박씨 문헌(文憲)의 딸이다.
본관 남원. 처음 이름 근우(謹宇). 자세춘(世春). 호 시암처사(鳲巖處士). 득관 조의 18세손. 경주목사 사준(思俊)의 넷째 아들 효로 동몽교관에 제수되고 만호, 공조정랑을 역임했으며 임진란을 피하여 경기도 시흥시 부곡에서 학교면 월호리 용호동으로 이거 정착하여 그의 후손이 번창하였다. 아내는 김해김씨 성…
1593~1624 본관 남원. 자 군보(君甫). 득관 조의 20세손. 운수의 아들. 효성이 지극하였고 사간원 정언(正言)을 지냈다. 아내는 광산김씨 성해(性海)의 딸이다.
1574~1619 본관 남원. 자 임년(任年). 호 죽사(竹史). 득관 조의 19세손. 공조정랑 근의 아들. 지용을 겸비하였으며, 임진란이 일어나자 약관의 나이로 이순신 휘하로 가려고 하였으나 아버지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618년(광해 10)에 건주위(建州衛)가 모반하자 이를 정벌하기 위해 김응하(金應河) 막하…
1799~1863 본관 남원. 호 농은(聾隱). 도수의 아들. 아버지의 병환에 곁을 떠나지 않고 극진히 간호했으며 할지주혈 (割指注血)하여 20여일간 더 연명케 하였다. 3년간 시묘를 사는 동안 눈물이 마르지 않았으며 어머니 상에도 전과 같이 하였다. 그의 아들 하환(河煥. 1827~1869)도 아버지에 지지 않는 효자로…
본관 함종. 1665. 8~1669. 5 까지 무안현감을 지냈다.
본관 함종. 임진왜란 때는 경기좌도 판관으로 재직했으며 병자호란 때 청병과 싸워 많은 공을 세웠다.
본관 함평. 잠(岑)의 후손. 고려조에 직제학(直提學)을 지냈다.
본관 함평. 잠(岑)의 후손. 고려조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모평군(牟平郡 - 함평의 옛 이름)에 봉작되었다.
본관 낙안. 산음교수(山陰敎授)를 지냈다.
함평오씨 시조. 비조 첨(瞻)의 25세손. 현보(賢輔)의 넷째 아들. 고려 원종(재위 1260~1274) 때 문과에 급제하여 태자태사 문하시중(太子太師 門下侍中. 종1품)을 지냈고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함풍군(咸豊郡. 함평의 옛 이름)에 봉해져 해주오씨 에서 분관(分貫)하여 함평오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후손은 현재…
본관 낙안. 용양위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본관 함평. 잠(岑)의 후손. 고려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상서(吏部尙書. 정 3품)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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