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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함평. 자 원일(元一). 시조의 15세손. 진사 방선(方善)의 아들. 1514년 문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를 지냈다. 아내는 달성서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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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5~1343. 본관 함평. 자 서숙(瑞淑). 호 충모재(忠慕齋). 시조의 7세손. 평장사 여장(汝長)의 아들. 1306년(충열왕32)에 문과에 급제하여 교관을 역임하고 그 직이 차차 올라 삼군도총제 부원수(副元帥)가 되었으머 원(元)나라 군사가 고려에 침입하자 부원수로서 원의 군사를 쳐부수고 나라를 평정하는데 많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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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남평. 선조 때 무과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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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남평. 고종 때 무과에 급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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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남평. 선조 때 무과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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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남평. 1600년경 나산면 삼축리 분토 동에 이거 정착하여 남평문씨 함평 입향조가 되었다.
아내는 함평이씨 지번(技蕃)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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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남평. 순조 때 무과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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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 본관 밀양. 자 윤빈(允斌). 시조의 27세손. 선전관 의현(義賢)의 아들로 성균관생원을 지냈다.
아내는 광산김씨 추백(秋白)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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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 본관 밀양. 자 시영(市榮). 호 지봉(砥峯). 정랑 번의 아들. 1588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주부를 지냈다. 임진왜란에 아우 광종(光宗)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초토사 고경명(招討使 高敬命) 휘하로 들어가 금산 싸움에서 아우와 함께 전사하였다. 그의 부인 김씨가 두 명의 노비와 함께 그의 시체를 찾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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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밀양. 정랑 번(蕃)의 아들. 광조(光祖)의 아우. 임진란이 일어나자 형 광조와 창의하여 고경명의 휘하로 들어가 금산전에서 형과 함께 전사하였다.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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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8~1592 본관 밀양. 자 도보(道寶). 호 남일재(南一齋). 시조의 24세손. 진사 대양(大陽)의 아들. 문무를 겸비하였으며 임진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이끌고 거제도와 한산싸움에 참전하여 여러 차례 공을 세웠으며 금산으로 옮겨 고경명군과 합세하였는데 중과부적으로 진중에서 고경명과 함께 순국하였다. 선무원종공신록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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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4~1796 본관 밀양. 자 영서(永瑞). 호 굴지당(屈指堂). 시조의 30세손, 성길(聖吉)의 아들. 문장이 뛰어났으며, 의영고주부(義盈庫主簿)를 지냈다. 아내는 광산김씨 성백(聖伯)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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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밀양. 시조의 23세손. 생원 석주의 둘째 아들. 성균관생원, 진사에 입격하였으며 함평읍 수호리에서 장성군 삼계면 사창으로 이거 정착하였다. 아내는 안동권씨 승지 집일(集一)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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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밀양. 시조의 23세손. 성균관생원 석주(碩柱)의 맏아들. 문장이 탁월하여 현종조에 어린 나이로 성균관생원, 진사과에 입격하였다. 아내는 함평이씨 습독 유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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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1834 본관 밀양. 호 계촌(溪村). 충신 이상(以祥)의 8세손.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여 잉어가 약이 된다하므로 엄동설한이나 못 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더니 얼음장이 갈라지고 잉어가 솟아올라 그 잉어를 잡아 봉양하니 병이 낫게 되어 모두들 지극한 효성에 하늘이 감동한 기적이라고 하였다. 증손대에 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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