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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4~1833 본관 광산. 자 사빈(士彬). 시조의 31세손. 도온(道溫)의 둘째 아들로 효우가 돈독하였고 박학하였으며 과거를 폐하고 오직 후학을 기르는데 힘써 사림의 모범이 되었다. 아내는 풍산홍씨 연호(連浩)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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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선산. 자 옥여(玉汝). 시조의 20세손. 부사과 준(俊)의 아들. 선략장군(宣略將軍)을 지냈다. 아내는 고령신씨(高靈申氏) 부원군 암헌(府院君 岩軒)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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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상산. 시조의 14세손. 함평입향조 중명(仲明)의 맏아들. 사옹원 참봉(司饔院參奉)으로 출사한 후 마도 만호(馬島 萬戶)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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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고종조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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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광산. 철종조(哲宗朝). 자 성규(聖奎). 호 덕헌(德軒). 생원 신형의 후예. 천성이 온공하여 능히 경장과 애친의 도리를 알았고 근검 치산하여 유후(裕後) 의 계책을 강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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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1487 본관 광산. 자 권경(權卿). 시조의 23세손. 진사 영진의 아들로 진사를 지냈다. 아내는 남평문씨 현감 구수(龜壽)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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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낙안. 자는 경여(慶汝)요 호는 농은(聾隱)이니 양해공 빈길의 후예다. 현종조(顯宗朝)에 학문이 순수하고 의지와 행실이단아하고 맑아 세상에서 중하게 대접 받았으며 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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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0~? 본관 김녕. 처음 이름 기린(麒麟). 자 세서(世瑞). 시조의 17세손. 선전관 서현(序賢)의 아들. 1710년경 경남 고령군에서 함평읍 장년리 백연동에 이거 정착하여 대사성공파 함평 입향조가 되었다.
아내는 이천서씨 상택(相澤)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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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광산. 몽성의 손자. 시조의 28세손. 1649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교위, 안주부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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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속의 여섯째아들. 숙종조 무과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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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고성. 본관 고성. 자는 내직(乃直)이요 호는 숭정처사(崇禎處士)이니 둔재 명(明)의 후예요 신독재 문인이다. 인조조(仁祖朝)에 성리학을 깊히 연구하고 춘추로 강론하면서 천상(天象)과 인사(人事)에 대한 법도와 사물의 법칙에 대한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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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 본관 광산. 자 서명(瑞明). 시조의 30세손. 첨추 명옥(命沃)의 둘째 아들. 감찰을 지냈으며 아내는 달성배씨 진사 문익(文益)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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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1783 본관 광산. 자 범숙(範叔)호 회춘당(回春堂). 시조의 29세손. 하상(夏相)의 넷째 아들. 평소 효성이 지극함은 물론 문장이 숙성(夙成)하였고 어버이상에 시묘를 살았으며, 1740년경 무안읍 고절리에서 학교면 학교리 회춘동으로 이거하여 양간공파 함평 입향조가 되었다.
아내는 이천서씨 유경(有景)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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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1650 자 군현(君玄). 호 색은(穡隱). 홍문관 교리 수(遂)의 둘째 아들. 통덕랑을 지냈다. 아내는 해주 최관(崔寬)의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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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1657 본관 김해. 자 군승(君昇). 호 가은(稼隱). 시조의 64세손. 홍문관 교리 수(遂)의 넷째 아들. 신독재(愼獨齋)의 문하생이며 당대의 명현이었던 청음 김상헌(淸陰金尙憲)과 교유가 깊어 춘추로 창수(唱酬: 시를 서로 주고 받음)하였으며 통덕랑을 지냈다. 아내는 광산 김이화(金履華)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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