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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9~? 본관 고성. 자 윤구(允仇). 호 중암(中庵). 시조의 39세손. 혁(赫)의 아들. 식견이 명민하였고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입격하였으며 희릉(禧陵) 참봉을 지냈다. 아내는 나주정씨(鄭氏) 성채(成采)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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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안동. 자 사현(士賢). 시조의 11세손. 151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통례원 봉례(通禮院奉禮)를 지낸 수준(守濬)의 아들. 사헌부 감찰(監察)을 지냈으며 1550년경 나주시 금천면에서 해보면 대창리(大倉里)로 이거 정착하여 안동김씨 함평군 입향조가 되었다. 아내는 나주나씨 영규(永圭)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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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1840 본관 김해. 호 용곡(龍谷) 탁영의 9세손. 진안(鎭安)의 맏아들. 부모님 병환 때 대변을 맛보아가며 극진히 간호했고 부친의 병이 위독하자 절지주혈(切指注血)했다. 흉년에 자선사업도 많이하여 나라에서 정려(旌閭)를 내리고(손불면 대전리 은곡마을 앞) 호조참의에 증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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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달운(達運)의 딸로 나주정씨 규영(鄭奎榮. 1811~1832. 시조의 24세손)의 아내며 남편이 병이 들자 남편 대신자기가 죽게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으나 남편이 타계하자 같이 따라 가려고 하였으나 늙으신 시어머니가 있어 마음을 돌리고 극진히 시머머니를 봉양했으며 시어머니가 병이나 사경을 헤매자 허벅지의 살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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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광산. 참봉 김중구(金重九)의 딸로 함평 이정좌(李廷佐. 1712 ~1768. 시조의 21세손)의 아내다. 시아버지의 병환에 의원이 구렁이 고기가 약이라고 일러주었으나 겨울이라서 구할 수가 없어 슬피우니 홀연히 구렁이 한 마리가 기어들어 삶아드려 효과를 보았고 시어머니 병환에 단지(斷指)하여 3일간 연명케 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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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김해. 자 대원(大元), 불기(不欺). 진사 종엽(宗曄)의 손자. 문장으로 이름이 높고 지략이 뛰어났다. 임진란 때 고경명(高敬命)이 의병을 일으킨다는 소식을 듣고 노비 10여명과 마을 장정 30여명, 그리고 군량미 20여석을 모아 고경명의 막하로 가던 도중에 적을 만나 용전분투하여 많은 적을 참살하였으나 적의 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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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0~1662 본관 선산. 자 광중(光中)호 삼석재(三惜齋). 시조의 25세손. 우안(友顔)의 양아들. 생부 우민(友閔). 임진정유란 공신 몽복(夢福)의 손자. 미수허목(眉 許穆)의 문하생으로 당세에 덕행과 문행으로 이름 높았으며 벼슬에는 뜻이 없이 오로지 후학을 기르는데 힘썼고 문생록과 문집이 전한다. 1730년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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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1713. 본관 선산. 자 휘중(輝仲). 호 월암(月巖). 시조의 25세손. 우민(友閔)의 둘째 아들로 허목의 문하생이다. 돈녕부 도정(都正)을 지냈다. 우민의 아들 5형제가 모두 당대에 학행이 뛰어나 사람들이 이들이 사는 마을을 “오룡동(五龍洞)”이라 불렀다. 아내는 광산 김씨 엽(燁)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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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1866 본관 광산. 자 무백(武伯). 호 후암(後庵). 시조의 32세손. 광수(光洙)의 아들로 당세에 시부(詩賦)로 명성이 높았다. 아내는 남양홍씨 태연(泰淵)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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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광산. 자 덕보(德保). 문안공 양감(文安公 良鑑)의 후손. 지략이 뛰어나고 병법에 능통하여 선조조에 무과에 급제한 후 수문장(守門將)이 되었다. 임진란때 이순신(李舜臣)을 도와 싸웠고 특히 명량(鳴梁) 싸움에서 많은 적을 참살하는 전공을 세웠으나 적탄에 맞아 순절하였으며 선무원종 공신록에 책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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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8~1499 본관 광산. 자 좌공(佐功). 시조의 22세손. 좌랑 자보(自普)의 아들. 성균관진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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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9~? 본관 고성. 호 명여(鳴汝). 시조의 37세손. 여산부사 익경의 둘째 아들. 문예가 뛰어났으며 중종 때 장사랑에 천거된 후 이조참의를 지냈다. 함평에서 경상도 성주(星州)로 이거하였다. 아내는 안동권씨 상열(尙烈)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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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 본관 광산. 자 하숙(河淑). 호 송암(松庵). 시조의 37세손. 효자 용현(龍鉉)의 아들. 부호군(副護軍)을 지냈으며 아내는 밀양박씨 기주(淇柱)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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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광산. 철종조(哲宗朝). 자 하숙(河淑). 호 송암(松庵). 지평 하상의 후예. 천자가 고명하고 재예가 뛰어나 문장이 성취되니 과문(科文) 6체를 줄줄이 외우며 후학을 길러내니 사림(士林)이 흠모하고 추앙하였으며 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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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9~? 본관 상산. 자 대기(大器). 시조의 14세손. 함평 입향조 중명(仲明)의 둘째 아들. 생원, 진사 양과에 합격하였으며 사온서직장(司 署直長), 진산군수(珍山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아내는 나주 정씨(鄭氏) 영광군수 관(冠)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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